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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짜장면보다 더 검다"
'짜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아마도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일 것이다. 앞서 개봉한 '기생충'(2019)의 짜파구리를 염두한 비유라 할 수 있다. '더 검다'는 건 박찬욱식 블랙 코미디의 진한 개성을 의미할 것이다. 그저 검기만 한 블랙이 아닌, 피 한 방울 떨어뜨려 검붉어진 박찬욱식 부조리극의 색채를 의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외신은 '해고'와 '재취업'이라는 소재가 지닌 동시대성과 공감대, '가족의 위기'라를 유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2의 기생충'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겠지만, 박찬욱은 봉준호가 아니고 '어쩔수가없다'는 '기생충'이 아니다. 이 말은 제2의 '기생충'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간 관객들에게 '어쩔수가없다'는 의외의 배신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의 영화적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을 아는 만큼 잘 보이는 영화고, 박찬욱을 좋아할수록 더 매력적인 영화다. 만약 그 반대라면? 그리 유쾌하지 않고,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다. 모든 영화는 취향을 타지만, 박찬욱의 영화는 유독 취향 장벽이 높다. 봉준호는 지하실과 계단을 통해 계급의 사다리를 다뤘지만, 박찬욱은 계급의 층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중산층의 경쟁과 낙오 그 악다구니를 블랙 코미디 장르로 풀며 자신만의 영화 미학을 펼쳐놨다. '어쩔수가없다'의 원작은 미국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다. 박찬욱 감독은 1997년 발간된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 무려 20여 년을 고군분투했다. 그 사이 세상은 너무도 변해버려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고민해야 했다. 주인공이 제지 회사 직원이라는 설정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소설이 기계화에 의해 인간이 대체되는 비극을 그렸다면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은 위협인 AI 문제까지 꺼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2악장이 흐른다. 공들여 가꾼 나무가 돋보이는 근사한 정원이 카메라의 중심에 들어오고 장어를 굽고 있는 만수(이병헌)가 모습을 드러낸다. 미리(손예진)는 그런 남편 옆에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애교를 부린다. 두 아이와 두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가 뛰어노는 이 전원주택의 풍경은 인상파 화가가 그린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아내와 아이들을 품에 안고 행복에 겨운 만수는 "다, 이루었다"는 말을 읊조린다. '어쩔수가없다'를 여는 이 오프닝 시퀀스는 향후 일어날 사건의 복선이자 전조다. 만수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자 아빠, 성실한 회사원이다. 국내 한 제지회사에서 20년 넘게 근속한 그는 '펄프맨' 상까지 받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외국 회사와의 합병 소식이 들어오자, 그는 직원들을 대표해 구조 조정에 대응할 시나리오까지 짜두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모가지'가 날아간 건 동료들이 아닌 자신이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그는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3개월 안에 재취업하겠다며 아내를 안심시켰지만 13개월 넘도록 무직 신세다. …